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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01:23

소 이야기 나오니까 하나더 생각나서 써본다...... S S D D


 2010년 말, 그리고 2011년 초 사이에 구제역이 엄청 돌면서 농가, 축산업가, 공무원들의 피를 마르게 하다 못해 좍좍 뽑아냈던 일.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치고 한국사 사상 최악의 구제역 파동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이 사건은 대단히 기억에 남다 못해 씁쓸하기까지한 사건이기도 했다.
 
 아마 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농가도 아니고, 농업과는 거리가 먼 도시에 사는 내가, 왜 구제역 사건에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아마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할아버지께서 농업에 종사하시고, 소를 키우시는데... 할아버지의 손자인 내가 농가와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내 존재가치를 아예 부정하는 것일 거다.
 
 
 그럼 이쯤에서 이 이야기는 제쳐두고.... 
 

 한번 농사꾼들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서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나 해보고자 한다.
 
 과연, 농사일 하는 사람들을 보았을때,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틀 이상 여행을 다녀오거나 한적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농사일, 그리고 축산업가 들의 생활이란 이런거다. 거의 집과 생활 터전인 밭과 축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나가봐야 시장이 벌어지는 읍내고, 좀더 멀리나가면 가장 인접해 있는 도시 정도다. 어쩌다가 자식들이 도시 구경이다, 아니면 해외여행이다 하면서 멀리 나갈일도 있겠지만 그것도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조부모 내외분들의 현재 일은 소와 10마리도 안되는 닭을 키우시고 집 뒤에 있는 밭을 경작하신다. 과거엔 쌀 농사도 지으셨지만 두분의 나이에 비해 일이 힘드시기도 하셔서 이제는 그 규모도 작아지고 지금 정도만 남았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려 있는 감들을 털어 곶감을 만시는게 또다른 업이라면 업이다.
 
 
 상황이 그런지라 나와 우리 부모님은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 가서 일손을 도울때가 많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그리고 축사 관리까지.... 이 작아 보이는 공간에서 할일이라는게 참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일이 바로 소 키우기 였다. 대규모는 아니지만 대략 6-7마리의 소가 축사에서 관리받으며 먹고 잔다.
 이 소들을 치시느라 할아버지 할머니는 거의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 제대로 먹는지,  쾌변(?)에 이상이 없는지, 혹시 어디 아픈것은 아닌지, 잠은 잘 자는지....
 혹시나 소가 이유없이 크게 소리를 내거나 하면 주무시다가도 눈을 번쩍 뜨시고 축사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분들이 이분들이다.
 게다가 이중에서 암소가 임신을 했다면? 두분다 군대로 치면 말그대로 진돗개 1 발령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신다.
 
 그렇게 항상 이런 상황을 확인하셔야 하니, 집에서 멀리 나가시지도 못한다. 나가야 고작 읍내 정도가 전부다. 누군가 관혼상제가 있을때 두분 모두 집을 비우고 나가시는 일은 거의 없다. 한번 대전이든 서울이든, 아니면 제주도나 해외 여행도 한번 가보실법 하지만 "그럼 소는 누가 돌보냐?" 고 하시면서 거절하실 정도였다. 가장 최근인 2011년도에 내 외할머니께서 타계하셨을때도 할아버지께서만 장례때 오셨고 할머니는 집을 지키셔야 했다.
오죽하면 우리 부모님께서 이제 소는 그만 키우시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나마 고집을 꺾고 남은 소가 저 정도인것이지...
 
 
 그러던 2011년 2월 구정, 할아버지 댁으로 갈 준비로 한창이였던 바로 전날,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전화를 하셨다. 이번 설에는 오지말고 다음 기회에 오라는 것. 구제역이 인간을 통해서 소에게 전염될수 있으니 구제역이 잠잠해지면 오라는 것이였다.
 결국 그해 설은 처음으로 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지만... 참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도 구제역 파동으로 시끌시끌하긴 했지만 이때문에 몇년간 이어져 왔던 고향방문이 끊어질 정도였다니....
 다행히도, 두분께서 계시던 지역에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그 느낌은 뭔가 참 씁쓸했다.


 그리고 나서 뉴스를 보니 구제역의 원인이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전염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물론 얼마 안가서 구제역 균이 동남아 권과는 아예 상관 없다고  밝혀 지면서 여론의 몰매를 맞았지만, 참 기분이 더러웠다. 어디 이유 댈 것이 없어서 농민들을 걸고 넘어지나.... 

 
 
 그런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2012년 새해에도 기어이 일은 또 터졌다. 큰 전염병은 퍼지지 않았다. 대신 소값이 그야말로 시원하게 토막나버렸다. 물론 쇠고기 가격은 그대로인 채로!!!!!!!!!!!!
 결국 농민들은 자식같은 소를 끌고 와서 시위를 벌였고 거기에 쌀농사 짓는 농민들도 와서 1년간 피땀으로 키워낸 쌀을 도로에 쏟아 부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농림부 장관이라는 양반은 그들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법을 어겼으니 농민들과 그 농민들이 소속된 지자체를 털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밥먹기 전에 그 밥이 어디서 나왔는지 1분이라도 생각해 보기나 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니 제발, 위로는 못할 망정 그런 개념없는 말은 그만 해주길 바란다. 아니면 차라리 말을 하질 말든가.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 다는 말이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세겨져 있는지 안다면 말이다.